일자 : 2017년 05월 03일 (석가 탄신일)
날씨 : 맑고 더움
코스 : 벽소령 - 도솔암 - 영원사 - 상무주암 - 문수사 - 삼불사 -약수암 - 칠상사 ( gps거리 약 15km )
산행시간 : 약 6시간 20분 (촬영하며)
♣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선명해집니다.
▼ 왼쪽 음정마을쪽으로 진행합니다.
▼ 왼쪽 숲길로 접어들고
▼ 작전도로 차량통행 제한
▼ 작전도로 한참을 걸어 오른쪽 비능으로 진입
(여기부터 된비알이 시작됩니다)
▼ 싱그러운 연록색 나뭇잎을 배경으로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 첫번째 안부에 도착해서 한숨 돌리고 왼쪽으로 진행합니다.
▼ 젤 싫어하는 바위 너덜길
▼ 지리산 7암자 중 첫번째 암자 도솔암에 도착합니다.
♣ 도솔암은 청매 인오(靑梅印悟, 1548~1623)가 수행하던 유서 깊은 사찰로,
1987년 해인사 혜암스님이 중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의 전언에 따르면, 도솔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707년(숙종 33)에 6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목조관음보살좌상으로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혜암스님의 원불(願佛)로 모셨던 것이나,
지금의 도솔암이 개창되면서 법당의 주불로 모신 것이라 한다.
▼ 초파일이라 음식 공양이 있읍니다.
줄서서 기다리고 (비빔밥을 공양하네요)
▼ 도솔암 뒷편으로 올라가 봅니다.
♣ 꽃잔디
▼ 도솔암을 지나 두번째 암자인 영원사로 갑니다.
▼ 싱그러운 연녹색 잎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 주변에선 계곡의 물흐르는 소리와 이름모를 새울음소리가 들리고
▼ 숲길을 나와 왼쪽으로 오르막 길이 영원사로 가는 방향입니다.
▼ 제2암자 영원사 도착
영원사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리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명 삼정산으로 불리는 곳으로
해발 920m의 고지대에 가람이 자리하고 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양정마을에서 남서쪽 지계곡을 타고 도솔암을 지나
삼각봉 북쪽 능선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영원사는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 해발 9백여 미터의 산중턱에 자리한 영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창건한 이래 서산,
청매, 포광 스님 등의 당대 선지식들이 주석한 바 있는 수도도량이다.
지리산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영원사는 지리산 주능선의 한가운데인 삼각고지에서
북으로 뻗은 삼정산을 뒤로
하고, 벽소령이 병풍처럼 앞으로 펼쳐져 있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다.
한때는 주변의 울창한 수림을 이용하여 너와로 이었던 100칸이 넘는 9채의 전각들로
웅장한 가람의 모습을 지녔을 만큼 내지리(內智異)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영원대사가 영원사 부근에 토굴을 파고 8년을 계속 참선 수도를 하였으나
깨우침을 얻지 못해 수도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다
물도 없는 산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 낚는 시늉을 하고 있는 노인의 말을 듣고
다시 참선 수도를 하고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영원대사가 창건할 때 얽힌 일화부터 예사롭지 않은 수도도량인 영원사는
고승들이 스쳐간 방명록이라고 할 수 있는 조실안록(組室案錄)을 보면 부용영관(芙蓉靈觀),
서산대사, 청매(靑梅), 사명(四溟), 지안(志安), 설파 상언(雪坡 常彦), 포광(包光) 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있다.
▼ 이곳도 식사공양 중
(이곳에서 공양하려 했는데 줄서서 기다려야 하네요 상무주암으로 패스)
▼ 영원사를 뒤로 하고 세번째 암자인 상무주암으로 출발합니다.
(2차 된비알이 시작되네요)
▼ 삼거리 안부 도착 잠시 물 한모음 마시고
▼ 오른쪽 산죽사이 약간 오르막길로 진행합니다.
▼ 아직 떨어지지 않은 진달래가 가는길을 반갑게 맞아주고
▼ 세번째 암자인 상무주암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약간의 수행승들과 함께 창건하고
일체의 바깥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에만 힘썼다
. 이 때 보조국사는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가운데
“선이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한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고 하는 글귀를 읽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1200년에 조계산 송광사로 옮겨 수선사(修禪寺)를 만들었다.
보조국사의 대오 이후 이 절은 성지화 되어
많은 승려들의 수행처가 되었으나 역사는 뚜렷이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당우는 인법당(因法堂)만이 있으며, 절 왼편에는 작고 불완전한 삼층석탑 1기가 있다.
이 탑은 고려 말의 고승인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다.
각운이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30권의 저술을 완료하였을 때
붓통 속에 떨어졌다는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서 서광을 발하였다고 한다.
♣ 내부는 사진촬영 금지입니다.(참고)
♣비빔밥 ,떡과 과일을 공양합니다.
▼ 물한모금 마시고 (날싸가 너무더워 물 엄청마십니다)
▼ 상무주암을 뒤로하고 네번째 암자인 문수암으로 갑니다.
▼ 문수암 도착
▼ 여기서도 인증으로 물한모금
▼ 문수암에서 다섯번째 암자인 삼불사로 갑니다.
▼ 삼불사 도착( 제 느낌상 젤 아름다운 암자입니다)
▼ 삼불사에서 6번째 약수암으로 갑니다.
내리막이 계속되는 숲길이 길게 이어집니다.
▼ 6번째 암자 약수암 도착
♣ 실상사 약수암의 보광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목각불탱.
▼ 약수암에서 마지막 암자인 실상사로 갑니다.
(실사사는 암자가 아닌 사찰입니다)
▼ 두릅나무
▼ 남원 실상사 도착
실상사는 828년(흥덕왕 3)에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하면서 창건하였다.
홍척은 도의(道義, 道儀)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禪法)을 깨우친 뒤 귀국하였다.
그 후 도의는 장흥 가지산에 들어가서 보림사(寶林寺)를 세웠고,
홍척은 이 절을 세운 뒤 선종(禪宗)을 전파하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거하여 볼 때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이 절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그 뒤 2대조 수철(秀澈)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서
절을 크게 중창하고 선풍을 더욱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1468년(세조 14)에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후 2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고,
승려들은 백장암(百丈庵)에 기거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벽암(碧巖)이 삼창(三創)하였고,
1684년 계오(戒悟)가 현재의 극락전(極樂殿)인 부도전(浮屠殿)을 지었다.
1690년에 침허(枕虛)를 중심으로 300여 명의 수도승들이 조정에 절의 중창을 상소하여
1700년(숙종 26)에 36동의 건물을 세웠다. 또한 1821년에는 의암(義巖)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1882년(고종 19)함양 출신 양재묵(楊載默)과 산청 출신 민동혁(閔東赫)에 의해
사찰건물들이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겪었으며, 1884년에 월송(月松) 등이 중건하였다.
1903년(광무 7) 익준(益俊)이 승당을 지었으며, 1932년 칠성각을 세웠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寶貨)가 많이 들어 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腹藏)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 권이나 들어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高麗板華嚴經疏) 등 보기 드문 서적도 몇 가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렸다고 한다.
1986년 요사로 사용 중인 선리수도원(禪理修道院)을 건립하였고,
1989년 천왕문을 세웠다.
1991년 범종각을 짓고, 1996년 화엄학림(華嚴學林) 강당과 학사를 건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산행정보
▼ 산행 시작후 30분 경과후 작동시킨 gps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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